인천의

등대를

찾아서


     사단법인 황해섬 네트워크 사진전      

전시일정

 2022.03.22.  - 2022.04.09. 


관람시간

11:00 - 20:00 ( 매주 월요일 휴관 )



갤러리스페이스앤은 지역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하여 모든 전시를 무료관람으로 진행합니다.




인천의 근대 해양문화의 중요한 요소인 등대





우리나라 최초로 팔미도,소월미도(해방과 함께 일본인들이 폭파) 등이 세워지면서 근대식 등대가 첫선을 보인다.

1884년에 정부관제가 4부 8아문으로 개편되면서 『해운 및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 「공무아문 관선과」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일본은 1895년 6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우 리나라 연안 30개소에 항로표지 설치를 위한 위치조사와 사업계획서를 수립하고 제출 하였다. 


이에따라 우리 정부는 1902년 3월 26일 미국 외 7개국에 외교문서로 고시하였으며 1902년 5월 인천항 팔미도·소월미도 등대와 

북장자서·백암등표설치공사를 착수 하여 1903년 6월 1일 팔미도등대·소월미도등대· 북장자서등표·백암등표를 신설 점등 하였으니 이것이 우리나라 근대식 항로표지의 효시이다. 



그 후 인천항의 부도등대, 여수 항의 거문도등대, 울산항의 울기등대, 제주항의 우도등대, 여수항의 거문도등대, 목포항의 칠발도등대 등을 

신설 점등하여 일제강점기(1910.8)전까지 유인등대 20기와 무인표 지 153기를 설치· 운영하였다.



인천의 현존하는 등대와 등표로 등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5개가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천의 등대와 등표




1 팔미도(구)등대 1903. 06 석조+벽돌 백원통형 7.3m /등대문화유산1호

2 북장자서등표 1903. 06 석조 흑홍흑탑형 14.5m/등대문화유산15호

3 백암등표 1903. 06 석조 녹6각형 14m/등대문화유산13호

4 부도등대 1904. 04 석조 백원통형 16m/등대문화유산14호

5 목덕도등대 1909. 12 콘크리트 백원통형 5.7m/등대문화유산16호






탐사후기1




삶의 길잡이, 바다의 길잡이 등대!



 

지난여름 백령도와 소청도 자연 조사를 다녀오면서 소청도 등대를 방문했었는데 소청도 원래 등대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등대였었다는 표식만 남아 있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지만 조심하면서 지난 9월 인천등대원정대에 참여해서 소야도 등대 및 북장자서 등표 등을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다.

역사에 남아있는 최초의 등대는 기원전 280년경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섬에 만들어진 등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삼국유사에 김수로왕이 아유타왕국의 공주 허황옥을 맞이하기 위해 망산도라는 섬에 불을 밝혀 뱃길을 안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실제 망산도는 현재의 부산 송정동에 있는 섬이다. 또한 조선시대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도 등대를 묘사한 그림이 남아 있다고도 한다.

현대적인 등대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횃불이나 봉화를 사용해서 등대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등대는 컴퓨터화되어 자체에서 날씨를 분석하여 필요에 따라 안개경보 경적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상 정보를 육지로 보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근대식 등대는 1876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 이후 인천, 부산, 원산이 개항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이때 인천항을 위한 팔미도 등대와 소월미도 등대가 처음 불을 밝히게 되었4f4f다고 한다.

 

이번 등대원정대는 승봉도를 깃점으로 해서 동백도 등대, 소야도 등대, 먹퉁도 등대, 소초지도 등대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암초위의 빨간색 북장자서 등표를 답사하였다. 특히 답사 중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본 북장자서 등표는 일본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세워진 소월미도, 팔미도 등대와 함께 1903년 6월에 점등을 개시하였다고 한다.

1차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서 뒤돌아보니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진 등대가 인천의 곳곳에 있는데 제대로 된 한국의 등대박물관 하나 갖지 못한 인천의 관심이 아쉽기도 하다. 등대는 바다의 밤길을 안내하는 단순한 역할만이 아닌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기도 한다. 캄캄한 길을 이어온 순례자에게 새로운 세상을 안내하는 그 등대를 답사하는 이 활동은 참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황해섬네트워크 이사겸 섬보존센터장/인천과학예술영재학교 교장 심현보.

탐사후기2




북장자서 등표




북장자서 등표는 팔미도 옆에 위치한 암초에 세워진 등표이다. 팔미도 등대, 영흥도 앞에 있는 백암 등표, 북장자서 등표 모두 1903년 6월에 세워졌으니 한국 최초의 서양식 등대와 등표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등대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인천의 등대가 다섯 개인데, 그 중 1호인 팔미도 등대, 13호인 백암 등표, 14호인 부도등대, 16호인 목덕도 등대와 나란히 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등표로는 백암 등표와 북장자서 등표만이 문화유산인데 둘 모두 당시의 최신 공법인 벽돌과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쌓았다. 백암등표가 사각형으로 쌓아올린 반면에 북장자서는 원형으로 쌓아올렸으니 더 많은 공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 보이지 않는 암초가 있다는 표시로 백암 등표가 초록색인 반면에 북장자서 등표는 암초나 수심이 얕은 곳이라는 뜻의 검정과 빨강이다.

색은 최근에 칠했겠지만 등표의 재료나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어 감흥이 남다르다. 등대 순례의 끝에 만난 북장자서 등표를 보니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세찬 바람과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에 옷은 젖고 몸은 피곤하지만 북장자서 등표가 이 모든 것을 말끔히 날려버린다.

 







황해섬네트워크 운영위원 / 환경운동연합 대표 심형진

 

전시장 전경